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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 당한 역사 - 서론 ' 초한전쟁 '

레널드 2022. 6. 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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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zsjRpcgfmk

BGM - Thomas Bergersen - Empire of Angels (Sun)

 

우리 한국사에 나온 최초의 고대 국가 고조선

 고조선 멸망한 기점 부터 우리를 침략한 국가, 이민족들을 한번 알아보자

 그럼 일단 한나라 건국부터 ㄱㄱ

 

 피 튀기는 전국칠웅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군주 영정

 

 하지만 그도 말년에 중2병에 걸려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고

한 유학자가 주나라를 찬양하고, 진나라를 비방하여 사상통제를 명목으로

 수많은 책을 불 태우고 유생들을  땅에 매장 시켰으니 통일 군주/폭군 두 가지 칭호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미친짓을 하는 황제 밑에 백성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농민 출신 진승과 오광이 먼저 불씨를 일으키고

 초나라 대장군 항연의 후손 항량과 조카 항우가 이때 거병을 하였다

 

정사와 소설은 좀 다른데 조만간 초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본격적으로 풀어볼 계획이다

 

초의제는 함양을 먼저 함락시키는 사람을 관중의 왕에 봉한다고 했고

 유방이 먼저 함양을 함락시키고 입성하였다

 

유방은 의제의 장수로 있기 전에는 정장(지금의 파출소장)출신이었고

이렇다할 공적도 없었고, 의제의 관중왕 임명 선언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항우가 누구냐 ?

 

  항우는 함양 진격중 장한을 격파하고 잠깐의 의심으로 투항한 진나라 20만 대군을

 전부 학살 시켜 버렸다.

 항우의 백성들의 지지도가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당연히 항우는 이를 인정 못하고 유방을 협박하고 함양을 빼앗았다

 

그리고 유방이 살려준 진나라 3대 황제 자영을 자결죽이고, 아방궁과 함양 일부 건물을 불태웠다

 이미 항우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도는 땅에 추락하였다

 

항우는 함양에 입성하여 유방을 굴복시키고 드넓은 중국땅을 18등분으로

분할하여 분할된 땅 만큼 18명의 공신들을 왕으로 봉했다 

 

 그 중 유방은 촌동네 파촉(지금의 중국 쓰촨성)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쓰촨성은 지금도 산지가 많아 인구, 농지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항우는 일부러 유방을 고립시키기 위해 파촉땅을 준 것이다

그리고 유방은 주변 봉분 받은 제후들을 쳐서 영토를 넓히기로 결정하였고

각지에서 승리하였다

 

 

 사실 항우는 유방에게 옛 정이 있었는지파촉땅과 함께 군사를 일부 주었고 

유방은 그 군사력으로 다른 왕들을 굴복시키며 승리한 것이다

 

항우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타이밍이 좋게 제나라 지역에 반란이 터지는 바람에

유방을 포기하고 제나라 지역으로 출정하였다

 

 

유방은 다른 왕들을 쳐서 관중은 물론항우가 자리를 비운 초나라 왕도 팽성까지 점령하였다

 하지만 유방은 출신이 동네 양아치 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방은 승리에 도취하여

 항우에 불만을 가진 제후국들을 호출해 56만 대군을 모아 팽성으로 진격하였다

 이에 항우는 크게 분노하였고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직접 요격하러 간다

 

먼저 항우는 유방의 장수 번쾌가 이끄는 3만의 군대를 격파하고, 

관영이 이끄는 10만 군대까지 격파하였다

그리고 유방은 남은 군대를 이끌고 출정하였으나 항우 이마저도 궤멸시켰다

 

 여기서 항우가 중국 역사상 최강의 무장으로 알려진 이유가 나온다

 힘은 산을 덮고, 그 기운은 세상을 뒤 덮는다 라는 역발산 기개세 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팽성대전에 의해 제후들은 항우에게 대부분 넘어갔으며

 유방의 장수이자 당대의 명장 한신은 이들 제후들을 다시 하나씩 굴복시켜야한다고 생각했다

 

한신은 여러 제후국들을 하나씩 굴복시키고

유방은 이제 남은 항우를 쳐야 겠다고 생각하고 30만여명 이상의 대군을 이끌고

수많은 제후들은 군사들이 이끌고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러 갔다.

항우는 해하에서 결전을 하기로 다짐하였고 10만 군사를 이끌고 방어하러 갔다

 

하지만 상대는 항우 였다

유방의 용맹한 장수들도 항우를 상대로 힘겹게 싸웠다

하지만 항우 역시 한신을 상대로 고전하고 있었다

 

한신은 일단 병사를 후퇴시켜 항우를 유인하였다

그리고 신호를 보내 좌군, 우군의 병사로 항우군의 양쪽 측면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한신이 다시 항우군의 앞쪽을 치면서 항우는 이 전투에서 10만중 8만을 잃었다

 

항우는 엄청난 피해를 입고 한군의 포위속에 있었다

장량은 희생 없이 싸움을 끝내겠다고 한 후 초군 진영에 사방에 초나라의 노랫가락을 연주하였다

다음 날 항우와 장수2명, 800여명의 병사들 빼고 다 탈영하였다고 한다

 

항우는 유방의 장군과 병사들을 베어나가면서 남은 20여명 남짓의 병사들이라도 고향에 돌려 보내주었다

그리고 항우는 최대한 저항을 하고 승산이 없을 깨닫고 자결하고 만다

 

마침내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겨 한나라를 통일 하였다

그러나 피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중국 3대 악녀중 한 사람인 유방의 부인 여치는 큰 공을 세운 한신을 역적으로 몰아서 죽이고 만다

 

말년에 허무한 죽음을 맞은 한신 여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크게 공을 세운 장군들을 하나씩 죽였다

유방이 죽고 아들이 왕이 되자 여치는 태후가 되었다

그리고 여태후는 유방의 애첩이었던 척부인의 사지를 자르고 유방과 척부인의 아들 조은왕 유여의는 독살 시켰다

 

2대황제 혜제는 척부인의 몰골과 이복동생의 죽음으로 충격을 먹고 정무를 돌보지 않고 23살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여태후에 의해 전한은 건국 초기부터 4대황제까지 엄청난 혼란에 쌓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태후가 죽으면서 전한의 5대 한문제가 즉위하고 6대 한경제와 내치를 닦고 유교를 숭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141년, 한 고조 유방이 천하통일을 한지 60년후

전한의 7대 황제 한무제가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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