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구름에 가리운 태산(무신 BGM)
귀주 대첩(1019년 3월)
고려 - 상원수 강감찬(208,000명) vs 거란(요) - 도통사 소배압(10만명)
2차 침공에서 고려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거란도 별 다른 이득 없이 철군하였다
하지만 3차 침공은 정예 기병 10만을 앞세우고 곧장 개경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였다
거란은 흥화진 근처 삼교천에서 수공 및 기습을 당했고 계속 되는 고려의 반격에
개경의 진군을 포기하고 철군하였으나 귀주에서 고려군과 접한다
강감찬은 귀주 벌판에서 20만이 넘는 군을 포진시키고 양군은 치열하게 싸우다가
김종현의 후속부대가 거란의 후미를 쳤고 이 전투에서 거란은 1천여명만 살아남았다
처인성 전투(1232년 12월)
고려 - 승장 김윤후(1,100명) vs 몽골 - 총사령관 살리타이(기록 없음)
살리타이는 처인성을 공략하기 위해 군을 3개로 분할하여 포위하였다
승병 김윤후는 대장으로 추대되었고 공격 예상지인 동문을 방어하기 위해 궁수를 배치하였다
그리고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이는 제대로 된 전투 전에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홍건적의 1, 2차 고려 침공(1359년 12월, 1361년 10월)
고려 vs 홍건적
원(몽골) 말기, 중원에서는 백련교도가 난을 일으키는데 이것이 ' 홍건적의 난 ' 이다
그러나 원나라의 대대적인 진압으로 홍건적이 밀려나면서 고려를 침공하였고
1차에서 고려는 서경을 빼앗기고 다시 정비하여 공격하여 홍건적이 패퇴하여
4만의 홍건적은 300여명 살아남아 요동으로 후퇴하였다
2차는 홍건적이 안주를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개경을 빼앗고
고려는 20만 군을 징발하여 개경 숭인문을 공격해 홍건적 10만을 사살하는 전과를 세운다
홍건적의 침입을 막았으나 고려의 피해는 막심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최영, 이성계 등의 신흥무인세력이 성장하였다
진포 해전(1380년 8월)
고려 - 장군 심덕부, 최무선 등(전선 100척) vs 왜(일본) - 기록 없음(전선 500척)
왜구의 대규모 선단이 큰 밧줄로 배를 묶어 형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때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을 이용하여 전선을 불태워버렸다
배에 타고 있던 왜구들은 거의 불의 타 죽었으며, 일부는 바다에 빠져 죽었다
황산 전투(1380년 9월)
고려 - 장군 이성계(1,500명) vs 왜(일본) - 아기발도(1만명)
진포해전으로 전선이 소실된 왜구들은 남원에 주둔하다가 개경을 공격한다는 위협을 가하자
고려는 이성계는 경상, 전라, 양광 도순찰사로 임명하였다
적들이 험지에 진을 치자 이성계와 고려군은 일제히 사력을 다해 공격하였다
왜구는 적장 아기발도를 비롯한 수천의 사상자를 입고 70여명만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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