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성전(태왕사신기 BGM)
좌원 전투(서기 172년 11월)
고구려 - 재상 명림답부(수천 규모) vs 한나라 - 현도태수 경림(1만 ~ 10만명)
전투 병력 규모는 삼국사기 아래 기록이 전부이다
" 한이 대병(大兵)을 이끌고 공격하였다, 명림답부는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좌원에서
한나라군을 섬멸하였고 말 한필 살아돌아가지 않았다 "
한나라군이 공격을 하자 고구려는 청야작전(성을 굳게 지키는 전략)을 실행하여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기가 떨어진 적군을 향해 명림답부가 수천의 기병으로 섬멸하였다
※ 박은식이 지은 「명림답부전」에는 한나라 10만 규모 추정
제2차 양맥 전투(서기 259년 12월)
고구려 - 중천왕(5천명) vs 위나라 - 장군 울지해(8천명 이상)
고구려 동천왕 시기, 위군의 침략을 막으며 연이은 승전을 하였으나
자만하여 크게 패하였다
그렇게 중천왕이 즉위하고 위나라가 다시 쳐들어왔고
고구려는 5천의 정예기병으로
적군 8천명(기록이 없어서 피해규모를 기준) 이상을 전사시켰다
임유관 전투(서기 598년 6월)
고구려 - 장군 강이식(6만명) vs 수나라 - 한왕 양량, 장군 주라후(30만명)
고구려는 수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정병 5만과 말갈군 1만으로 임유관을 공격하였다
수나라 영주총관 위충이 패배하자 수나라 황제(문제)는 아들인 한왕 양량에게 30만 병력과
장군 주라후에게 수군을 주었으나 수군은 요하에서 격파당하고
나머지 병력은 장마로 인한 전염병과 군량미부족으로 퇴각하였으나
강이식이 이를 쫓아 임유관에서 섬멸하였다
수나라는 상당한 피해규모로 인해 수나라 문제 정권이 몰락하고
고구려는 요동지역을 확보한 상태로 2차 침공을 준비할 수 있었다
살수 대첩(서기 612년 7월)
고구려 - 장군 을지문덕(3만명) vs 수나라 - 장군 우중문, 우문술 등(305,000명)
수나라는 문제에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양제는 113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하였고
그 증 정예병 30만을 뽑아 고구려의 왕도 평양을 공격하게 하였다
을지문덕은 거짓 패전을 연달아하며 후퇴하였고, 수나라군은 100일치 군용품을 들고 추격하느라 피로할 수 밖에 없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진에 와서 수나라군의 상황을 보고 거짓 항복을 제안하였다
수나라는 거짓 항복을 명분으로 사기가 떨어진 군을 철군하였고 살수을 건너고 있을 때 을지문덕은 후미를 공격하였다
이때 수나라의 305,000명 별동대는 2,700여명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안시성 전투(서기 645년 6월~9월)
고구려 - 안시성주(10만명) vs 당나라 - 황제 이세민, 장손무기 등(20만 ~ 50만명)
당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당 태종 이세민은 성을 우회할 경우 보급로 차단 우려로 공격을 명하였고
안시성은 군민을 포함해서 10만명(인근 성의 지원병력을 빼면 더 적다는 의견도 있다)이었다
계속 당군의 사상자가 늘어나고 50만명을 동원해 토산을 쌓았으나 오히려 고구려가 토산을 공격해 취하였다
당나라는 석달 간의 공방전으로 하루 사상자만 평균 2,500명이었고, 합산할 경우 20만명이 넘는다
일부 야사에서는 당 태종 이세민은 화살을 맞아 한 쪽 눈이 실명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사수 전투(서기 662년 2월)
고구려 - 대막리지 연개소문(수만명) vs 당나라 - 장군 방효태, 소정방 등(수만명)
당나라는 1차 침공 때와 달리 요동 방면의 군사적 소모를 줄이기 위해
해상으로 평양에 곧장 상륙하였다
연개소문은 당의 대규모 침공을 역으로 적국의 내부는 비어있다고 판단하여
철륵을 매수하여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예상대로 일부 당군은 반란 진압을 위해 회군하였고 연개소문을 군을 모아 남은 당군을 몰살시키고
당은 장군 임아상과 방효태를 포함한 13명의 아들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군사 규모는 양국 모두 알 수 없지만 당나라측은 사상자만 수만명으로 나와 10만 규모 이상으로 예상
매소성 전투(서기 675년 9월)
신라 - 장군 김원술(3만명) vs 당나라 - 장군 이근행(20만명)
고구려,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는 한반도에 침략 야욕을 드러냈다
매소성에 주둔한 당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천성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인근 지역에서 당나라 기병과 싸워서 이겨 매소성을 함락시켰다
추가적으로 기벌포에서도 장군 시득이 수군을 격파하여 승리하였다
당나라는 기벌포 전투에서 상당 수의 전함과 4천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고
매소성전투에서 무기 3만명분과 군마 30,380필을 빼앗기고, 수천의 기병이 전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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