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쉬어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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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떼우기/▧ 사건, 역사 52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나갈 때는? - 전쟁사(한국) 1편

https://youtu.be/-_lz6yvAOAw BGM - 성전(태왕사신기 BGM) 좌원 전투(서기 172년 11월) 고구려 - 재상 명림답부(수천 규모) vs 한나라 - 현도태수 경림(1만 ~ 10만명) 전투 병력 규모는 삼국사기 아래 기록이 전부이다 " 한이 대병(大兵)을 이끌고 공격하였다, 명림답부는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좌원에서 한나라군을 섬멸하였고 말 한필 살아돌아가지 않았다 " 한나라군이 공격을 하자 고구려는 청야작전(성을 굳게 지키는 전략)을 실행하여 겨울이 다가오면서 사기가 떨어진 적군을 향해 명림답부가 수천의 기병으로 섬멸하였다 ※ 박은식이 지은 「명림답부전」에는 한나라 10만 규모 추정 제2차 양맥 전투(서기 259년 12월) 고구려 - 중천왕(5천명) vs 위나라 - 장군 울지해(..

싱글벙글 전쟁사 - 2

1. 아군인줄 알았는데 제2차세계대전, 연합군의 폭격기들은 독일을 폭격하기위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맞은 편 아군의 B-17폭격기가 오는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방향에 놀랐지만 연합군들은 빨리 가야해서 신경쓰지 않고 갔다 그런데 B-17폭격기가 더 높은 고도로 올라가 아군의 폭격기를 격추하고 있던것이었다 그것은 독일군이 위장한것이었다 2. 무인항공기의 좋은 타이밍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군이 무인항공기를 썻다는 기록이 좀 있다 저의 자폭용으로 사용되었는데 어느날 터져야하는 비행기가 그냥 맥없이 떨어졌다. 독일군은 이게 유인항공기인줄 알고 접근했다 병사 하나가 겁을 주기위해 총을 한발 쐈다 6톤의 폭탄을 싣은 비행기는 총을 맞자 독일군 50명이 그자리에서 죽었다 3. 한국전쟁의 인민군 전술 한국전쟁 당시 국군패..

싱글벙글 전쟁사 - 1

1. 송나라와 여진족의 전투 때는 송나라 시대, 말을 탄 15명의 여진족 사신은 송나라로 가고 있었다 하지만 송나라 조정은 이들이 노략질을 하러 온줄 알고 보병 2천명으로 공격을 가했다 여진족 사신 15명은 정규군이 아니다 승리는 여진족이었고, 2천명의 송나라 병사들은 도망쳤다 2. 고대 중국의 또다른 보급품 고대 중국에서는 먼곳으로 전쟁을 하러 갈때 양과 염소는 필수였는데 중국인들은 제일 좋아하는 돼지를 놔두고, 양과 염소가 필수였을까? 양과 염소에게는 사람과 똑같은 신체부위가 한 곳 존재한다 3. 전쟁터에서 없어진 갑옷들 때는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 기사단이 영국군 진영으로 돌격하였다 기사들은 영국 장궁병의 화살에 맞고 전부 전멸하였는데 당시 기사도 정신에는 죽은 병사를 수습할 때는 공격하지 않는게 ..

의자왕의 진실

'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 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이런 가사가 있다 ' 백결선생 떡방아 ~ ♪ 삼천궁녀 의자왕 ~ ♪ '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궁녀가 3천명이나 있을정도로 방탕하다는 것을 가사로 보여주었다 과연 사실일까? 의자왕의 폭정은 즉위 말기에 일어났다 즉위 초에는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비롯한 요충지의 성 수십개를 탈환하고 수나라를 물리친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당나라와 전쟁을 하고자하였다 하지만 말년이 되자 사치스러운 생활과 왕권강화를 명목으로 충신을 투옥하는 등의 실책을 저질렀다 하지만 3,000명이나 달하는 궁녀는 너무도 과장된 숫자였다 " 올바른 역사를 인물의 '공로'와 '과실'을 둘다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성동격서, 장사상륙작전

https://youtu.be/-UdiZNJMgTo BGM - Tennessee(Pearl Harbor, 2001)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은 대대적으로 남한을 침공하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2/3이상의 장병들이 모내기를 하기 위해 외박 및 휴가를 내려간 상황 북한은 그 타이밍을 노리고 남침을 한 것이다 개전 3일만에 서울을 빼앗기고 개전 40일쯤에 낙동강까지 밀려내려가면서 국군은 사력을 다해 낙동강을 방어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낙동강에서만 방어할수 없는법 그때, 미군측에서 방법을 하나 제의했다 작전명 ' 174 ' 적의 본진이 있는 영덕군 장사리를 기습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작전을 수행하는 대원들은 특전사도, 정규군도 아닌 10대의 어린 학도병 772명이다 북한군을 교란하기 위해 북..

조선시대 양반들도 인정한 군자

정부인 안동 장씨(장계향) 1598 12월 21일 ~ 1680년 08월 01일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 ' 음식디미방 '의 저자 아들이 정2품 벼슬에 오르면서 사후 10년 뒤인 1690년 정부인으로 추층되었다 현모양처가 아닌 실천한 군자로 평가로 받고 있다 " 너희들이 비록 글 잘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해도 나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착한 행동 하나를 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아주 즐거워하여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 - 장계향이 자식들에게 하던 말 -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 - 3편

탕가 전투(1914년) 독일-탄자니아(1,355명) vs 영국-인도(8천명) 제1차세계대전중 일어난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일어난 전투 청산리 대첩(1920년) 한국 독립군(3,050명 ~ 4,700명) vs 일본 제국(3만명 ~ 3만5천명) 독립군 60명 전사 90명 부상, 일본은 1,200명 전사 및 3,300명 부상 겨울 전쟁(1939년) 핀란드(30만명, 탱크30대, 항공기110대) vs 소련(148만명, 탱크 6,541대, 항공3,881대) 소련은 전술적 승리, 전략적으로 패배 미드웨이 해전(1942년) 미국(항모 및 지원함 53척 vs 일본(항모 및 지원함 154척) 허술한 일본의 암호 체계 영국 본토 항공전(1940년) 영국(1,963대) vs 독일(2,550대) 영국의 꼼꼼한 대공 방어 체계와..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 - 2편

출하점 대첩(1114년) 금나라 아골타(3,700명) vs 요나라 천조제(100,000명) 겨울 야간 기습을 통해 요나라군을 공격 호보답강 전투(1115년) 금나라 아골타(20,000명) vs 요나라 천조제(700,000명) 천조제는 내부 정치적인 문제로 후퇴 아골타는 뒤를 공격하여 대승 야호령 전투(1211년) 몽골 징기스칸(100,000명) vs 금나라 완안구근(300,000만 ~ 500,000만) 몽골은 험한 지형으로 통신체계가 어려운 금나라군을 각개격파 진포 대첩(1380년) 고려(100척) vs 왜(500척) 고려의 장수 최무선이 화포를 발명해서 왜의 군선들을 불태워 승리 오케하자마 전투(1560년) 오다 노부나가(3,000명) vs 이마가와 요시모토(20,000명) 휴식중인 이마가와군을 오다가..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 - 1편

목야 대전(기원전 1046년) 주나라 무왕 희창(40만명) vs 은나라 주왕 제신(70만명) 주 무왕의 책사 강태공의 뛰어난 전략으로 대승 무왕은 은을 무너뜨리고 주나라 건국하였다 ※ 은나라의 군사 수는 과장된 면이 있음 마릉 대전(기원전 343년) 제나라 손빈(5만명) vs 위나라 방연(10만명) 손빈의 감조지계(아궁이 수를 줄여 거짓 후퇴) 써서 방연을 유인 마릉에서 손빈에 계책이 걸려든 방연은 바위에 손빈이 새겨넣은 ' 방연은 여기서 죽다 ' 라는 문구를 보고 자결하였다 이 전투로 위나라는 다수가 전멸하고 방연이 만들어 놓은 중화의 패권마저 상실 그리고 제나라가 패권을 가지게 되었다 마라톤 전투(기원전 490년) 아테네(11,000) vs 페르시아(15,000) 페르시아의 정예 기병대가 진영을 비운..

조선시대 엑셀.jpg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 식목 사업을 마무리 짓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지난 7년간 인근 8개 고을에서 나무를 심었다. 이제 논공행상을 하련다. 심은 나무가 모두 몇 그루냐? 어느 고을이 나무를 가장 많이 심었는가?”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관련 공문을 실어오게 하니 소가 끄는 수레 하나에 차고도 넘쳤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각 고을에서 올라온 공문이었다. 정조가 다산에게 말했다. “네가 좀 정리해 다오. 대신 분량이 책 한 권을 넘으면 안 된다.” 이후 정약용의 작업 과정은 이랬다. 아전을 시켜 공문을 고을별로 분류한다. 여덟 덩어리 묶음이 나왔다. 묶음마다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정리가 끝나자 연도별로 작은 묶음을 구분하였고 다산은 아전에게 고을별로 빈 도표가 그려진 종이를 내줬다.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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