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The Witcher 3: Wild Hunt OST - The Fields of Ard Skellig
관동대학살의 원인은 바로 지진에서 시작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잦은 지진이 발생한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표준시 기준으로 11시 58분 땅이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강한 흔들림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4 ~ 10분까지 이어졌다
도쿄 전역과 치바, 사이타마, 가나가와, 야마나시를 포함한 간토지역에 지진이 난 것이다
생각보다 심각한 피해규모 때문에 일본 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 하였고
치안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였음에도 민심은 바닥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때 내무성의 눈에 들어온건 일본에 들어온 수 많은 조선인들이었다
"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
" 조선인들이 독이 든 만두를 나눠주고 있다 "
" 조선인들이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도록 저주를 퍼붇고 있다 "
라는 이상한 소문까지 퍼트렸다
그리고 이미 천황은 신(神)이다라는 사상에 물들여
우민화 정책이 완료된 일본 국민들은 저 소문을 믿게 된다
경찰들은 이 소문을 명분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3.1운동이 끝나고 일본은 유화책으로 조선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다고 하지만
실상은 3.1운동이 일어나기전 무력적인 통치보다 더욱 잔악하였다
일본은 경찰 뿐만아니라 시민들은 자경단까지 조직해
일본어 발음으로 자국민과 구별하여 조선인들을 죽이기 시작했고
발음이 안 좋거나 말을 못하는 사람도 가차 없이 죽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 뿐만아니라 중국인, 류큐인, 그리고
발음이 사투리, 선천적으로 안 좋거나 말을 할 수 없는 일본인도 죽임을 당했다
황당한 점은 발음이 안 좋다는 이유로 미국, 유럽에서 온 외신 기자들도 희생되었다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들이 실제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지만
조선인들도 간토 대지진의 피해자였기 때문에 폭동을 일으킬 여력이 없었다
당시 희생된 규모는
도쿄의 스미다강과 아라카와강의 강물이 희생자들의 시신으로 전부 핏물이 되었다
라고 표현했다
2010년, 이때 죽은 조선인 희생자는 6,600명이라고 주장했으나
2013년, 추가 자료가 발굴되면서 간토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의 수가 23,058명이라고 주장하였다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6440143?sid=104
간토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구로자와씨는 13살이었다
구로자와씨는 장난삼아 우물에 낙서를 하였는데
낙서를 본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표시로 오해하고 그 우물을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에는 당시의 사건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대체 인간이란 어떻게 된 존재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시간떼우기 > ▧ 사건,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 - 1편 (0) | 2022.07.18 |
---|---|
조선시대 엑셀.jpg (0) | 2022.07.17 |
중일전쟁 최악의 전쟁 범죄, 난징대학살 (0) | 2022.07.04 |
고구려시대 단청 (0) | 2022.07.03 |
조선족, 한국전쟁에서 활약.jpg (0) | 2022.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