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간이 또 공을 세우려고 교련하지 않은 군사를 이끌고 급히 나가 싸워 패전하여 죽은 자가 태반이었다. 오직 추밀원별가(樞密院別駕) 척준경(拓俊京)이 병기ㆍ개마(介馬 갑옷을 입힌 말)를 임간에게 요청하여 적진으로 들어가 그 장수 한 사람을 베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을 빼앗았다. 《고려사절요》
1104년(숙종 9년) 북방의 여진족이 그 세력을 확장하자, 고려 조정은 평장사 임간(林幹)을 보내 동녀진을 공격하게 합니다. 하지만 임간은 전공을 탐내어 무작정 여진군을 추격했다가 대패를 입고, 오히려 정주성까지 내어준 채 선덕관까지 패퇴합니다. 그 때였습니다. 추밀원별가(樞密院別駕)에 지나지 않던 척준경은 임간에게 무장한 말과 병기를 청합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임간은 청을 승낙했고, 척준경은 홀로 패퇴하는 고려군 사이를 비집고 적진으로 들어가 단숨에 적장을 베어버립니다. 이로써 여진군이 혼란에 빠져 퇴각하자, 척준경은 다시 기병 일백기를 이끌고 재차 공격하여 적장 2명을 참살하는 등의 전과를 올리고 유유히 개선합니다.
이 싸움으로 척준경은 천우위록사참군사(千牛衛錄事參軍事)의 벼슬을 제수받습니다.
드디어 석성 아래에 이르러 갑옷을 입고 방패를 가지고서 적중에 돌입하여 추장 두서너 명을 쳐 죽이자, 이에 윤관의 휘하 군사는 좌군과 더불어 공격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고려사절요》
1107년(예종 2년) 윤관이 이끄는 고려군은 정평성과 보음성을 점령하고, 다시 북진하여 오늘날의 함흥지역에 해당하는 석성(石城)을 공략합니다. 하지만 여진족의 저항이 강하여 감히 점령하지 못하자, 다급해진 윤관은 척준경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해는 기울고 사태는 급하니, 너(척준경)는 장군 이관진(李冠珍)과 함께 이 성을 공격하라." 이에 척준경은 주저않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추장 두세명을 베어넘기니, 윤관은 대군을 이끌고 총공격하여 성을 점령합니다.
이 싸움으로 척준경은 고려 조정으로부터 비단 30필을 하사받습니다.
적이 윤관 등을 몇 겹으로 포위하여 형세가 매우 위급하니 척준경이 용사 10여 명을 거느리고 …중략… 적진을 뚫고 들어가 10여 명을 격살하니 최홍정ㆍ이관진(李冠珍) 등이 산골짜기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하였다. 《고려사절요》
1108년(예종 3년) 윤관과 오연총은 8천의 정병을 이끌고 출정하여, 가한촌(加漢村) 병목의 작은 길로 진군합니다. 그러나 동녀진의 매복에 걸려 고려군은 궤멸되고, 윤관의 주위에는 부상당한 연총과 10여명의 군졸만 남게 됩니다. 이를 본 척준경은 아우 준신(俊臣)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수만의 적진으로 뛰어들어 적군 10여명을 격살하고 윤관을 구출합니다. 마침 최홍정, 이관진의 군사가 당도하므로 여진군은 비로소 포위를 풀고 물러납니다.
이 싸움으로 척준경은 윤관과 부자의 연을 맺고, 합문지후(閤門祗候)에 임명됩니다.
같은 해에 여진족이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영주성을 공격해 옵니다. 윤관과 임언등은 적의 수가 많고 아군의 수가 적음을 들어 농성을 주장합니다만, 척준경은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나가 싸워야 한다며 결사대를 이끌고 나아가 여진군을 공격합니다. 싸움은 대승이었습니다. 척준경은 북과 피리를 불며 유유히 개선하였고, 윤관은 직접 나와 이를 맞이합니다.
척준경이 군사의 해진 옷을 입고 밤에 줄에 매달려 성을 내려가, 정주로 돌아가서 군사를 정돈하고 통태진(通泰鎭)을 통과하여 야등포(也等浦)로부터 길주에 이르러 적을 맞아 싸워 크게 부수니, 성 안의 사람들이 감격하여 울었다. 《고려사절요》
같은 해에 여진족이 군사 수만명을 이끌고 출병하여 웅주성을 포위·공격합니다. 최홍정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가 적을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지만, 갈수록 적군의 포위가 길어지자 척준경은 밤중에 홀로 성을 빠져나와 정주성으로 갑니다. 척준경은 그곳에서 병사들을 정비하여 이끌고 나아가, 길주에 이르러 적군과 접전하여 대승을 거둡니다.
그 이후 …
인종이 즉위하자, 척준경은 중용되어 중서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제수됩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않아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더니, 이자겸과 함께 궁궐을 침범하는 난을 일으킵니다. 그는 이내 뉘우치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탓하던 중, 인종의 밀서가 그에게 내려집니다. 요약하자면 '짐은 그대가 충성스런 신하임을 의심치 않노니, 이자겸을 처단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밀서까지 받은 척준경은 결국 이자겸을 척결하고, 그 공으로 문하시중(門下侍中)에까지 임명됩니다. 하지만 이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는 정지상(鄭知常)의 탄핵을 받아 실각하는데, 향후 공로가 인정되어 관직에 등용되기도 합니다만 곧 숨을 거두고 맙니다
『 해석 』
1. 국경선까지 남진한 여진족들을 정벌하기 위해 고려에서 임간을 파견했다가
임간이 대패하여 군진이 무너졌을 때 당시 중추원별가였던
척준경이 홀로 말을 타고 돌격하여 적 선봉장을 참살하고
포로로 잡힌 고려군 200명을 빼앗아옴.
2. 윤관의 여진 정벌 당시, 여진족이 석성에 웅거하여 별무반의 앞길을 가로막자
척준경이 석성 아래로 가서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성벽으로 올라가 추장과 장군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성문을 열어 고려군이 성을 함락함
3. 윤관과 오연총이 8천의 군사를 이끌고 협곡을 지나다가 5만에 달하는 여진족의 기습에
고려군이 다 무너져 겨우 10여 명만 남았고, 오연총도 화살에 맞아 포위된 위급한 상황에
척준경이 10여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구원하러가자 아우인 척준신이 말렸다.
"적진이 견고하여 좀처럼 돌파하지 못할 것 같으데 공연히 쓸데없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척준경이 가라사대.
"너는 돌아가서 늙은 아버님을 봉양하거라! 나는 이 한 몸을 국가에 바쳤으니
의리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척준경이 돌격하여 10여명을 참살하고 적장을 활로 쏘아 거꾸러 뜨렸다.
척준경과 10명의 용사들이 분투하여
최홍정과 이관진이 구원하고 윤관은 목숨을 건진다.
4. 여진족 보병과 기병 2만이 영주성 남쪽에 나타나 고려군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윤관과 임언이 방어만 하려고 하자, 척준경은 단호히 반대하고 나섰다.
"만일 출전하지 않고 있다가 적병은 날로 증가하고 성안의 양식은 다하여 원군도
오지 않을 경우에는 어찌합니까. 공들은 지난 날의 승첩을 보지 않았습니까?
오늘도 또 죽음을 힘을 다하여 싸울터이니 청컨데 공들은 성 위에서 보고 계십시오."
척준경이 결사대 100기를 이끌고 성을 나가 분전하여
적의 선봉장을 참살하고 적들을 패주시켰다.
5. 척준경이 방어하고 있던 성이 포위되고 군량이 다해가자 지휘를 부관에게 맞기고
척준경은 원군을 부르기 위하여 사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홀로 적진을 돌파하여
원군과 함께 성을 포위하던 여진족들을 격파하였다.
이후 이자겸씨와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화공으로 공격하여 점거하였으나
인종이 "권력 니 다주께"라는 소리에 혹해 이자겸을 배신하고 권력을 잡아 온갖권세를 다부림.
그 다음해 탄핵받아 유배당하나 복권됨
이게 사람이라고?
'# 시간떼우기 > ▧ 사건,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짜르트의 두 얼굴.jpg (0) | 2023.05.03 |
---|---|
한국전쟁, 유엔군 파병 규모.jpg (0) | 2023.05.01 |
[유희 작가] 이예의 일본통상기 - 하편.Manhwa (0) | 2023.04.13 |
[유희 작가] 이예의 일본통상기 - 상편.Manhwa (0) | 2023.04.13 |
흑인노예들을 위한 성경.jpg (0) | 2023.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