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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위대한 기사들의 시대 - 1편

레널드 2023. 4. 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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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 기스카르 - 이탈리아 ]

11세기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활약한 노르만족 출신의 기사

형제가 무려 자신을 포함해서 12명이었기에 유산을 물려받기 힘들거라 생각한 기스카르는

형제 8명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로 건너가 용병이 되었다

남부 이탈리아 세력을 잡고 그의 활약이 교황에 귀에 들어왔고 교황은 로마 교황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해 기스카르를 지원하여  이탈리아 일부를 가진 동로마를 공격하였다

 

크루세이더 킹즈3 로베르 공작이 로베르 기스카르

기스카르는 전투에도 연달아 승리하여 교황은 아풀리아 백작에 임명되고

형이 죽고 칼라브리아 공작에 임명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이 교황청을 포위하자 즉시 구원군으로 달려와 교황을 구출하였다

그 뒤 궂은 날씨와 베네치아 해군의 방해를 뚫고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진격하다가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 베르트랑 뒤 게글랑 - 프랑스 ]

프랑스는 영국과 백년전쟁을 치루고 있었고 당시 그 유명한 잔다르크가 활약하였다

잔다르크가 전쟁 후반기에 활약했다면 베르트랑은 전반기에 활약하였다

그는 가난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가 17세가 되던 해 어느 공작의 결혼으로 기사 토너먼트가 열렸고

베르트랑의 아버지는 낡은 갑옷을 걸치고 토너먼트에 참가하였다

베르트랑은 아버지를 응원하기 위해 토너먼트로 갔고 거기서 다른 귀족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비웃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베르트랑은 분노하였고 어떤 패배한 기사에게 달려가

" 말과 투구를 빌려주십시요 " 라고 말을 한 후

말과 투구를 받아 출전하였다

베르트랑은 그 대회에서 아버지를 비웃던 기사 15명을 연속으로 격파하고

그렇지만 아직 어린 베르트랑은 어떤 노르만 기사에게 투구가 벗겨져 정체가 드러났다

베르트랑은 이렇게 데뷔하였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왕위계승권과 영토 분쟁으로 백년전쟁을 일으켰고

베르트랑은 의용군을 모아 영국군과 싸웠다

그는 당시 기사들이 경멸했던 게릴라전을 통해 잉글랜드를 괴롭혔고

베르트랑은 30명을 이끌고 매복하여 잉글랜드군을 향해 화살을 쏘고

적장을 죽였고, 랭스 공방전에서 일기토를 하여 적장을 죽여 잉글랜드군을 패퇴시켰다

이 외에도 디낭을 수성하여 잉글랜드군을 막아냈고 훗날 샤를 5세는 베르트랑은 정규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잉글랜드 에드워드3세가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베르트랑은 노르망디 코크렐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기로 한다

잉글랜드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지만 베르트랑은 일부러 초반에 허술하게 싸우다고 후퇴하고

잉글랜드가 이를 뒤쫓자 베르트랑은 매복해있던 좌익으로 잉글랜드 측면을, 우익은

잉글랜드의 후미를 치고 자신의 본대도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잉글랜드의 정면을 쳐서 승리하였다

베르트랑은 이후 총사령관으로 임명되고 빼앗긴 국토를 되찾다가 잔병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였다

 

[ 흑태자 에드워드 - 잉글랜드 ]

프랑스에 베르트랑이 있었다면 잉글랜드에는 에드워드가 있었다

항상 검은 갑옷을 입고 압도적 무력을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흑태자라고 불렀다

푸아티에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이 열세였던 에드워드는 프랑스의 국왕 장2세에게 협상을 요청하였으나

장2세는 도리어 무리한 돌격을 하여 에드워드에게 포로로 잡힌다

적국의 왕이지만 에드워드는 장2세를 극진히 대접하고 나중에 몸값과 대신할 볼모를 보내는 조건으로

석방되었지만 장2세는 약속이 지켜지질 않자 스스로 잉글랜드로 돌아가서 생을 마감한다

에드워드는 넓은 아량, 왕족임에도 일선에서 군을 지휘하는 능력과 강자에 굴하지 않는 용기 등

기사의 귀감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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